누구도 도와줄 수 없다

Wed Sep 03 2025 00:00:00 GMT+0000 (Coordinated Universal Time) 도움 조회 0

아주 오래된 나쁜 습관이 있었다. 뭔가 해보려고 하면, 해보기도 전에 누군가에게 도움이나 조언을 구하려는 습관. 조언을 구한 대상은 심지어 그 분야에 경험 있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냥 나보다 경험이 많아 보이면 누구든 붙잡고 물어봤다. 왜 그랬나 돌이켜보면, 혼자 실행하기가 불안하거나, 아니면 괜히 주변에 내가 뭘 할 건지 알리고 싶은 이상한 습성이 있었던 것 같다. 말하고 나면 뭔가 한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고. 근데 그건 착각이었다.

이게 전혀 현명하지 못하다는 걸, 한참 지나서야 조금씩 알게 됐다. 무언가를 직접 해보지 않고서는, 좋은 조언을 듣기 위한 준비 자체가 안 된다. 무엇보다 정말 내게 필요한 진짜 질문을 만들 수가 없다. 그냥 불가능하다. 실행도 안 해보고 문제가 될 부분까지 상상으로 끌어다가 질문을 만든다는 게, 얼마나 허술한 일인지 나중에서야 알게 됐다. 이런 가짜 질문으로는 누구에게서도 쓸 만한 조언을 받기 어렵다.

경험상, 이런 질문을 들고 가면 하수 선배들은 얼씨구나 신나서 묻지도 않은 얘기를 하루 종일 늘어놓는다. 조언과 충고는 대개 하는 사람이 즐거운 법이다. 반면 진짜배기 선배들은 조언을 아낀다. 좋은 질문과 경험 없이 오면 제대로 된 답을 줄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고, 설령 정답에 가까운 말을 해줘도 그걸 당사자가 받아들이고 실행하는 건 또 다른 문제라는 것도 알기 때문이다. 오히려 고수일수록 조언보다는 잘 들어주고, 존중하고, 격려만 해줬던 것 같다.

위 내용을 다 접어두더라도 문제는 또 있다. 내가 가진 맥락을 짧은 시간에 누군가에게 전달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몇 달을 고민한 것들을 30분 대화로 설명하려 하면, 그 순간 이미 많은 게 빠진다. 상대방은 내 상황을 절반도 모른 채로 답을 준다. 선의로 하는 말이지만, 그 사람이 나의 조건과 맥락을 다 알 수는 없으니까. 설령 오랫동안 옆에서 지켜봤다 해도, 실행하는 건 나고 책임지는 것도 나다. 친구든 가족이든 대신 해줄 수 없다.

그래서 결국 just fucking do it이 맞는 것 같다. 할 거면 하고, 아닐 거면 입 밖에 내지 않는 편이 낫다. 아직 실행도 안 한 상상 속 계획을 남한테 설명하고 답변 듣는 게 꽤 낭비였다. 나도 해보지 않았으니 상상으로 이야기해야 하는데, 거기에 뭔 의미가 있겠나. 막상 해보면 예상이랑 전혀 다른 문제가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그 전에 받은 조언들은 그냥 공중에 흩어졌다.

그래서 생명이 위험한 상황 같은 게 아니면, 웬만하면 혼자 실행하고 책임지는 게 낫더라. 처음엔 불안했다. 내가 놓치는 게 있으면 어쩌나, 더 좋은 방법이 있는데 모르면 어쩌나. 근데 혼자 부딪히다 보면 근육도 생기고 감도 생기고, 판단도 조금씩 나아지는 느낌이 든다. 실패해도 내가 왜 그 선택을 했는지 알고 있으니까, 다음에 뭘 바꿔야 할지도 보인다. 남의 조언을 따르다 실패하면 그게 안 된다.

불안하고 외로운 건 솔직히 아직도 그냥 받아들이는 수밖에 모르겠다. 해결하는 방법을 찾은 게 아니라, 그냥 같이 살아가는 방식을 익힌 것에 가깝다. 그래도 계속 직진하다 보니 예전보다는 좀 익숙해지긴 했다. 사업, 퇴사, 여행, 연애, 뭘 먹을지, 뭘 살지. 각자 알아서 하는 거라는 생각이 든다. 남이 정답을 갖고 있을 거라는 기대를 내려놓으니 오히려 편해졌다.

정말 도움을 청하려면, 좋은 질문을 들고 가야 한다는 걸 느꼈다. 좋은 질문은 어떻게 나오냐. 직접 찾아보고 정리하거나, 실제로 실행해보면 나온다. "이거 해야 할까요, 말아야 할까요" 같은 질문은 상대방도 답할 수 없다. 해본 사람도 모른다. 근데 "이렇게 해봤는데 여기서 막혔어요, 어떻게 뚫으셨어요?" 같은 질문은 다르다. 진짜 경험에서 나온 거니까 서로 뭔가 교환이 된다. 아무것도 안 하고 좋은 질문을 만들려면 또 상상해야 한다. 적어도 나한테는 그게 잘 안 됐다.

그래서 이 오랜 습관을 버리고 작년부터 그냥 알아서 하고 있다. 투자자든, 선배 사업가든, 나보다 오래 산 사람이든 묻지 않기로 했다. 훨씬 심플하다. 내가 배우고 쌓이는 것들이 더 단단해지는 느낌도 있다. 누군가에게 검증받은 경험이 아니라, 내가 직접 몸으로 통과한 경험이 쌓이니까. 그 차이가 생각보다 크다.

말과 실행 사이의 거리가 멀수록 삶의 밀도가 낮아지는 것 같다. 생각하는 것을 살고, 사는 것을 생각하자.

내 스스로에게 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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